
이 병원 홈피엔 “1980~90년대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중독 환자들의 직업병 인정투쟁의 성과로 설립된 녹색병원은 노동자는 물론 ‘지역주민의 건강문제를 함께 치료하는 동반자’로서 건강한 지역,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실천하고 있습니다.”란 소개가 있다. 이사장 양길승 님은 박정희 정권 때 길 건너 맞은편 서울 문리대생이 박 터지게 “독재타도, 유신철폐”를 위해 싸우다 끌려가던 중에도 고상?하게(=이기적으로) 상아탑에 갇혀있던 의과대에서 정말 희귀하게, 소수의 의대·간호대생을 모아 현실 참여를 주도한 써클 우두머리 출신. 그분이 의사가 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를 꾸려 의료계에서 드물게 현실참여적인 활동을 하신다는 얘기는 그분과 함께 써클 활동을 했던 간호학과 출신 내 절친에게서 들었다.
그리고 원진레이온 환자의 산재 인정투쟁에 앞장서 돕다가 승리 거둔 후 면목동에 녹색병원을 세웠단 소식은, 노동운동 쪽에 관심 갖고 있던 남편을 통해 들었다.
젊어서 한때 진보적인 활동을 하던 이들이 세태에 영합해 기득권층으로 신분상승하는 숱한 모습들을 봐왔던지라. 개인적으론 일면식도 없던 양길승 님과 녹색병원은 ‘진귀한 이 사회의 숨은 보석’이란 감동을 안겨주어 뿌듯한 기분이었다. 왜, 그렇잖은가? 누군가의 선행을 접하면 내가 하지 못한 거라도 내 일마냥 뿌듯한 감정이 든다는 거! 그리고 선행은 전염성이 강하다는 거!
하여 40년 세월을 난치병으로 시달리다 56세에 세상을 떠난 동생을 생각하며 ‘아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눔을 생각할 때 선뜻 녹색병원이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렇게 후원자로 인연을 맺게 된 녹색병원은 이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의 소중한 첫 삽을 뜨고 있다.
죽을병은 아니지만 증세가 너무 고통스러운 질환으로 누워 꼼짝달싹도 못한 채 내 평생 내지를 비명의 총량을 다 내지르며 녹색병원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한 순간부터 녹색병원은 내게 크나큰 은인이 되었다. 환자로서의 내 경험을 통해 그간 녹색병원이 구해낸 인명이 얼마나 많았을까를 실감하게 됐으니까. 우선 친절한 품성을 가진 분들의 자상함이 환자에게 주는 그 안도감이란!
건강검진센터 실장님, 구급차 기사님, 응급실 선생님들, 주치의 선생님과 많은 간호사님들, 청소·식사를 책임지신 분들에 이르기까지 ‘아! 이제 살겠구나’는 안도감을 주셨으니... 모든 분이 내 생명의 은인이 돼주신 셈이다. 솔직히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서 “죽을병 아니라 치료도 입원도 불가능하다”며 퇴원 조치를 당했을 때 난 심리적으로 ‘죽음의 절벽’에 서 있었다. 그래서 녹색병원이 나를 받아준 순간 새 삶이, 희망이 생긴 것이다. 심지어 주치의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훈련을 하다 보니 언제 ‘죽겠다’ 했는지 모를 정도로 만 하루가 못 돼서 눈을 뜰 수 있게 되고(심청의 맹인 아버지 눈떴을 때보다 훨씬 더 큰 행복!!!). 목을 좌우로 돌리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어디 그뿐인가? 그 다음 날은 아교풀로 붙여놓은 듯 베개에서 1mm도 떨어지질 않던 머리를 들어 올려 앉아서 식사, 식사 후 폴대 끌고 살금살금 걷기를 시작했으니... 기저귀 없이 화장실에서 용변 볼 수 있는 기쁨은 덤!
이제 ‘전정훈련’ 통해 남은 염증 후유증 극복하는 회복 단계가 남아있긴 하지만.
기저귀 차고 누워 “응애응애” 대신 “아아아아악, 어지러워...” 비명만 질러대던 갓난쟁이가 멀쩡히 두 발 달린 어른으로 급속 성장을 했으니,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병원분들입니다~”라고 녹색병원을 홍보하는 걸로 이 은혜를 갚는 수밖에 없다.
고마워요! 녹색병원!!! 사랑해요! 녹색 여러분!!!
덧) 대형종합병원보다 좋은 점으로 외래진료 대기시간 짧고. 의사샘 면담시간 엄청 길고. 한적해서 ‘사람멀미’ 일으키는 일 없고. 필요하면 대형병원으로 신속히 전원해 주시고. 심지어 7층 하늘옥상(하늘정원)은 ‘햇님과 산들바람과 둘러싼 산들의 경관’이 신선계에 온 듯한 기쁨을 덤으로 안겨준다!
- 2025. 4. 13.(일) 입원환자 윤혜영, 녹색병원에서